스승의날 박코치님께.
안녕하세요. 코치님. 부산훈련소에서 코치로 근무 했던 선미코치 입니다.
진작에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으나 표현이 서툴러 안부인사가 늦었습니다. 오늘 스승의날을 기회로 연락 드립니다 (별로 안 궁금해 하시는데,, 귀찮게 해드리는건가요? ;;헤헤).
2010년 3월에 소리영어 훈련소에서 영어를 시작하여 2014년 지금 2차병원 국제환자 센터에서 외국인 환자를 담당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하는 일은 외국인 환자 오시면 처음 접수부터 마지막 수납 후 약을 사서 가시는 것까지 모두 통역하고 안내해 드리는 것 입니다. 모든것이 박코치님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제 모습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 인생에 부모님만큼의 가장 큰 영향력을 주신 분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라며,, 어떻게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립니다.
6개월 과정을 마친 후, 영어 코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제 인생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에게 영어 코치라는 영광스런 자리를 주셨던 점 너무 너무 감사해요. 어떻게 표현을 못해 자꾸 똑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 같아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박코치어학원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보겠습니다 헤헤^^;;
처음 350반 2개월은 그냥 왔다 갔다만 했어요. 맨날 그냥 노래만 부르고 시트콤 따라하고 마치면 바로 땡 집에 가기 바쁘고, 지각 하면 안되니까 집에 오자말자 바로 땡 취침하고. 그냥 의미없이 왔다 갔다만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훈련시간에는 열심히 했어요ㅋ. 그러던 중 2010년 5월,, 박코치님 메인 타픽 시간에 해주셨던 말 한마디가 제 머리를 띵~!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당신네들이 이때까지 해 놓은게 뭐가있어? 영어 하나 제대로 안 해 놓았으니 여기서 지금 하루종일 있는거 아니야?” 뭐,, 이런 이야기였어요. 이때까지 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그냥 왔다 갔다만 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 하고 머릿속에 번뜩 했어요. 그 날 마치고 바로 남코치님(부원장님)에게 상담신청하고 트레이너 시켜달라고 했어요. 5월 중간이였는데 저를 위해 그룹 하나 만들어서 트레이너 바로 시켜 주셨어요. 그 때는 트레이너가 모잘랐으니까요. 그래서 매일 4시20분에 일어나서 김해에서 통학 하면서 6시 스터디를 시작 했습니다. 버스에서 이어폰 꽂고 10회반복 들으면서 남의 시선 따위 안중에 없고 혼자 중얼중얼 따라하고 그러다가 침흘리며 잠도 잤었네요. 박코치님 말 한마디에 머리 띵~ 맞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코치가 되어서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 버리기 싫어서 꾸준히 6시에 나왔었드랬죠,, (지금은,,, 4시20분에 일어나는 거 상상도 못함,, 사람이 참 또 그 상황에서 벗어나니,, 어렵게 만든 습관도 그냥 무너지더군요,,) 이렇게 시작된 박코치님에 대한 사랑(?)이 제가 영어로 말 할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참 대단한 사랑이죠??ㅋㅋ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박코치님의 멘토링 너무 너무 그립다는 점 입니다. 훈련생일 때는 메모지에 적어서 버스에서 다시 한번 읽고 그랬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유치하고 웃겨요….(부끄)지금 옛날 생각하면서 편지 쓰니까 다시 의욕이 솟고 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이제 병원 업무에는 익숙해 졌으나 의료 쪽으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박코치님 덕분에 의사들이 보는 영어로 된 논문도 보고, 간단한 단어 (혈압,혈당,소염제,소아과의사 등등)는 처음 오자 말자 듣고 이해할 수 있었고 제가 사용 할 수 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토픽으로 뉴스를 했던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요. 정말 박코치님의 훈련에는 깊은 뜻이 다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몸소 느끼는 중입니다.
지금은 박코치 사단으로서 훈련법을 알리지는 않지만, 외부에서 열심히 알리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영어 공부 어떻게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구요. 특히 주위 친구들이 많이 물어요. 저 학교 다닐 때 영어 완전 못했어요.
출처 : 박코치어학원 공식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