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코치 어학원 집중반 15기 졸업생 이보람(Hailey)이라고 합니다. 6개월 동안의 길지만 너무도 짧았던 대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졸업을 했습니다. 박코치 어학원에서의 6개월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을 지 모를 정도로 짧고 매 순간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조금 늦게 집중반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1월을 기점으로 저의 인생은 박코치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로 나눌 수 있는데요.
박코치를 알기 전에 저는 그저 평범한 다른 학생들처럼 학생신분으로 살며 취업을 위한 토익 점수에 연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그저 항상 말뿐인 학생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방학이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하듯이 토익 학원을 등록하고.. 그러던 중 오빠가 박코치 어학원을 소개해주면서 그 때 처음 박코치 어학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빠는 저에게 그 학원에서 비단 영어뿐만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 지 배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2012년 새해가 시작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이후 인터넷을 통해 박코치 어학원에 대해 검색해 보았습니다. 사실 그다지 많은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학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 때가 1월 9일 이었습니다. 처음에 학원에 들어선 순간, 그 때 그 기분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저기 개인용컴퓨터 화면을 보며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저마다 큰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투쟁적이고 도전정신이 느껴졌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약간 기가 죽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상담을 받고 다음 날부터 바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과정이 시작된 때였기 때문에 두 달을 기다려 3월 달에 시작하려고 했으나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바로 다음 날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1월 10일 이었습니다. 남들보다 2주 가까이 늦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성격이 굉장히 소극적입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나서서 했던 기억이 없고 학교 이외에 이런 단체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친구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 상황이 너무나 불편하고 사람들 앞에선 제대로 말 한마디를 못하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처음 학원에 적응하는 시간이 꽤 힘들었습니다. 박코치 영어학습법에 대한 정보도 없었을뿐더러 제한된 공간 안에 사람들과 12시간 이상을 같이 있어야 하는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처음 350반에서의 기억은 적응하느라 애썼던 기억 밖에 없었습니다. 영어 학원이라고는 토익 학원에 다녀 본 경험이 전부였던 저였습니다. 영어회화라는 것은 항상 저 멀리 제쳐두곤 했었습니다. 수업을 시작할 때 먼저 팝송을 부르면서 리듬도 익혀보고 가사의 의미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는 수업시간에 코치님이 제 이름을 호명하기만 하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었습니다. 오죽하면 원어민 코치님이 수업시간마다 “Hailey, please voice up. More emotion I can’t here you.” 이렇게 말할 정도 였으니까요. 심지어는 수업시간에 액팅이라던지 노래라던지 시키기라도 하면 아예 하지도 않았던 저였습니다.
350반에서 발성과 기합을 익혔는데. 특히나 2번 기합과 ‘R’사운드가 저에게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평소 주로 목을 이용해서 말을 하던 저였는데 배를 이용해서 소리를 만들고, 연구개음을 닫아서 소리를 만드는 등 이론만 들어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던 중 발음수업을 담당하고 계셨던 권오성코치님의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350반에서 발성을 잡지 못하면 700반을 가고 1000반을 가도 지금 상태와 비슷할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말이었죠. 그 때부터 며칠 동안을 학원에 늦게 까지 남아 2번 기합과 R사운드를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요. 전혀 되지 않던 발성과 기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훈련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듯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고 350반이 끝날 무렵, 어느 정도 학원에 적응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울렁증은 아직 고쳐지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렇게 700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700반에 올라가기 전 많은 코치님들께서 700반에서는 할 것도 많고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사전에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물론 체력적으로 힘든 적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운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700반부터는 박코치 학습방법에 대해 이해도 했었고 트레이닝 하는 것이 몸에 익었기 때문에 전보다는 즐기면서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700반에서의 담임코치님이 김은정코치님(어썸)이셨는데, 특히나 코치님과 수업 시작 때 팝송을 부르며 함께 훈련하는 것이 즐거웠었고 기억에 제일 남습니다. 그 때 배웠던 팝송 안에서의 표현들도 좋았었구요. 그리고 이 시기에 저의 성격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액팅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졌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700반이 끝날 무렵 저는 저의 울렁증이 고쳐진 줄 알았습니다. 저에게 거대한 벽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죠. 졸업스피치 레코딩이었습니다. 700반에서는 대표자들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700반 전체 트레이니들이 녹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녹화 당일이었습니다. 반에서 어썸코치님과 함께 연습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의 차례가 되어 앞에서 선 순간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 수 조차 없었습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고쳐진 줄 알았던 울렁증이 다시 저를 작아지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많은 생각을 했지만 평소 박코치님이 항상 강조하셨던 긍정의 힘으로 다시 용기를 내어 도전했습니다. 무사히 녹화를 마치긴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녹화를 한 것 만으로도 큰 변화였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을 어썸코치님. 감사했어요. 물론 같은 반 친구들도 이런 저를 많이 이해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Blue Blue bring it on!
이제 마지막 집중반 과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1000반이 되었습니다. 1000반에서는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등이 많다고 해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박코치님이 항상 강조하던 긍정파워를 가졌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1000반에서는 무엇보다 외국인 코치들과의 수업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특히나 디스커션 수업이 있었는데 매시간 다른 주제를 가지고 토론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수업을 하며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도 더 많아지고, 지난 4개월 동안 배웠던 input을 마구 쏟아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국인 코치들과도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었으며, 유창하진 않지만 그들과 막힘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이태원에 갔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평소 학원에서의 외국인 코치들이 아니고 다른 처음 만나는 외국인들을 만나 준비했던 질문을 하고 그 이외에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경험이 저에게 조금 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6개월 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7시까지 이곳에 오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것도 어느새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좋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게 영어뿐 아니라 게을렀던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생황습관을 몸에 익히게 되었습니다.
Life doesn’t turn out the way you plan so just bring it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