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박코치님 수업을 처음 듣고, 스터디를 하면서 제가 트레이너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았습니다.늘 월 말에는 그 다음 달에는 완출하겠다는 게 유일한 목표가 되곤 했었기 때문입니다.
잦은 야근에 어쩌다 회식을 하는 날이면 소주도 두 어잔 마시고 음주훈련도 하였지만, 내가 '선택 '한 학원이라는 인식은 언제든 내가 원할 때 그만두고 또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믿게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실도 그러하지만, 의지와 포기를 반복하면서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어느 새 불가능 한 일로 기정사실화 되어 한 동안 영어학원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박코치님께서 '집중반 '을 구상 중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2010년 하던 업무가 일부 변경이 되고 외국인과 접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해 말에는 외국인 앞에서 예정에 없었던 PT를 하게 되었는데, 간단히 설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단어 몇 개도 제대로 못 읊었습니다.
결국 중간에 중단되었지요.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워서 지금도 생각하면 양 어깨를 떨며 부끄러워합니다.그래서 다시 박코치님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국내어학연수 프로그램 '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뭘 망설였겠습니까. 시간을 들여서라도 '전과 동 '인 상황에서 벗어나서 제 꿈에 한 발짝 돋움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큰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1년 9월 집중반 13기에 입소해서 6개월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머리도 못감고 양치질도 훈련소에서 하지만 훈련 전 팝송 한 가락에 피곤의 각질을 털어내며 다시 고고씽하는 열정은 무척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구나. "
입소 첫 날의 촌티를 벗고 마침내 졸업스피치를 준비하며 훈련소 안의 어떤 광기가 저를 그토록 변화시켰는지 제 꿈은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전과 동 '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서 외국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졸업 후 '정말로 그래봐야겠다 '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여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 싱가포르로 취업을 하였고 5개월 동안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당시 거래처 담당자들과 회의를 할 때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면,
"어느 나라 사람이냐? 진짜 한국사람 맞나? 한국 사람이 이렇게 영어 잘 하는 거 처음 봤다. "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ㅜ_ㅜ 그러나 그 것이 외국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국사람이고 그 안에 박코치식 훈련으로 단련된 사람이 돋보이는 이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매일 아나운서와 미국배우들의 발음, 억양 그리고 표현으로 씨름을 하니 당연히 좋아져야지요. 권코치님 발음훈련 끝나면 녹초가 되서 탄산음료를 마셔야 했고, Review 시간에는 밤새 제대로 일하지 않았던 해마를 탓했어요. 그렇게 코치님들의 채찍을 맞아가며 훈련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훈련생으로 돌아와 스터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 트레이너예요. 이로써 2008년에 가졌던 꿈은 이뤘고, 그 중간에 가졌던 꿈도 이뤘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꿈을 향해 고고씽하고 있습니다.
제게 집중반에서의 6개월은 '내가 선택한 영어학원 '의 개념이 아닙니다. 제 삶을 다각도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이끌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곳입니다. 저 한 사람이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곳은 그냥 그렇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그 동안 코치님들께 받은 지도편달을 다른 훈련생들과 함께 누리는 게 지금 제 목표 중의 하나 입니다.
저를 보면서 '저런 애도 했는데 나도 못할 거 없지! ' 라고 믿게 만들고 싶습니다.
제 얘기 솔직히 재수없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언젠가 이런 재수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하핫.
아참, 얼마전에 외국계 기업에 취업했는데, 놀랍게도 저희 팀장님도 집중반 졸업생이셨습니다. 입사 첫날, 이제 박코치에서 키운 인재들을 사회에서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박코치 인맥인거 비밀로 하자고 하셨는데.. 직원들은 저 모를꺼예요. 사진도 아직 안냈어요. 이 글을 빌어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스터디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코치님들 포에버.! 13기 포에버~!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