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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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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례의 공기업 입사까지.
작성자
장준영
작성일
2018-05-15
조회
13,709
추천
0

후기를 쓸 수 있는 이유.

영어를 삐까뻔쩍하게 잘해서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다거나...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세계일주를 이뤄냈거나..
영어를 정말! 원어민처럼 잘하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다!!

저는 6개월의 시간을 묘사하기 위해
실제 면접에서도, 그리고 친구 및 지인들에게도 항시 얘기합니다.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합니다.

결과론적으로 저는 현재 부산의 공기업에 취직하였습니다.
영어를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직업은 아니지만, 이 직업을 선택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영어 훈련이 함께 하였습니다.
저의 간략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부산 국내어학연수 17기 졸업 후 원래의 계획이었던 복학을 뒤로한 채 호주로 떠났습니다.
나름 1000시간의 내공을 믿고 자신감 한 가득 갔었는데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호주 특유의 엑센트와
한껏 눌려진 발음들은 다시금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인들을 맞이할 수 있는
농장과 공장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100곳이 넘는 카페와 음식점을 직접 들려
이력서를 전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통장 잔고 약 5만원을 남기고 뉴질랜드인 밑에서
키친핸드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지역을 옮겨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우스키핑과 바리스타를 겸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해보지 못했던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세계 각국의 배낭객들을 맞이했습니다. 그 때였던 것 같습니다. 진짜
최 코치님 말씀대로 겁없이 '그냥 한번 해보는 거'하면서, 저의 내성적인 성격을 뒤로한 채
배낭객들에게 서슴없이 먼저 말을 건냈습니다. 프렌즈에서만 나오던 재미없고 식상한 챈들러의 개그들
다 써봤던 것 같습니다. 영어는 낯선 것에 대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이후로도 15개국이 넘는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2. Couchsurfing과 수출상담통역 아르바이트
귀국 후 복학을 하면서 자취를 시작하였습니다. 나만의 집을 가지면서 한 여행객을 통해 들었던 카우치서핑을 시작했습니다. 카우치서핑을 여행객에게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낯설고 때로는 이질감도 여전히 느꼈지만, 정말 판이한 삶을 살아온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웬지 모를 전율을 느끼곤 했습니다.
또, 우연한 기회를 통해 벡스코에서 진행하는 G-Star의 B2B관에서 이뤄지는 수출상담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내 업체 혹은 해외 Buyer의 미팅에 참여하여 통역을 진행하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동시통역과 같은 최상급 수준의 영어 구사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토익 950점과 오픽 AL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일했던 통역사들도 해외유학파에 외국 대학 출신들이 많았지만... 그냥 또 굴하지 않고 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용어 때문에 식은 땀이 나고, 통역사를 배려하지 않고 3~4문장을 쭉 얘기할 때는 다시 한 번 얘기해달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하지만.. 뭐 ㅎㅎ 나름 그 또한도 10번이 넘는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저만의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3. 진로 선택
영어실력이 느는 것 만큼, 직업 또한 영어와 관련된 해외영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영어는 결국 취미로 하고, 문제없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로벌 인재를 꿈꾸시는 분들께 좋은 귀감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저는 제 2의 인생을 꾸릴 수 있는 공사에 입사하게 되어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처음에 배우고자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절대 이 길로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영어를 배우며 느낀 점
국내어학연수 과정 중 R사운드가 나오지 않아, 목이 쉬어 아무말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연습하고, 눈물이 나올만큼 속상해서 코치실로 뛰어가 R사운드가 나오지 않는다고 코치님께 울먹이며 하소연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 R사운드가 가장 높은 산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산을 나도 모르게 넘었고, 새로운 산을 맞이하였고, 그 산들을 넘다보니 자신감과 용기를 자연스레 가질 수 있었습니다.
면접 질문에서도 생활신조와 좌우명이 무엇인지, 본인이 가장 최선을 다했던 경험을 물어보면 꾸밈없이 박코치 시절의 노력과 교훈을 언급했습니다. "Never compare yourself to others"와 6개월간 1000시간의 영어학습을 위해 새벽 4시반에 일어나 6시 스터디에 참여하고 10시에 취침했던 지난날들을 답변으로 했습니다.

훈련 과정은 진짜 지금 돌아가도 힘들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이 이 훈련을 통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동기 부여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신다면, 이 많은 수기를 보신다면, 한 번쯤은 의심이나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진짜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목 그대로 훈련의 성공담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신다면 하신만큼의 열매를 수확하실 것이고, 그 스토리는 또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고,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치님으로부터 성공담을 써달라는말을 들었을 때도 처음에는 자랑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저는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저의 이 스토리가 영어 훈련을 열심히 하시려는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드시 열심히 하셔서, 본인만의 성공 훈련담을 쓰시길 바라겠습니다 :)

p.s 졸업 후 학원을 방문할 때 마실 거 사오지 마시고.. 씹을 수 있는 걸로 사오셔야 합니다...
마실거 사왔다가도 혼날 수 있습니다 ^^;;
두서없는 글 인데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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